2층은 필요 없지만 계단은 갖고 싶었다
이 블로그는 일본 북쪽, 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건축회사 Evohome이 씁니다. 긴 겨울과 깊은 눈 속에서도 따뜻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북쪽의 삶’을 담은 집을 만드는 사람들이죠.

2016년 완공, 지금은 9년 된 집입니다.
유튜브에서 목수 쇼-얀의 계단 만들기 영상을 보다가 “오, 솜씨는 좋은데… 설계가 좀 아쉽네” 같은 생각을 했더니, 이 평집이 떠올랐습니다 (웃음).
이 집의 건축주 부부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주방 쇼룸에서였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오더 키친을 전시하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새집을 팔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주방만 주문받기’ 위한 실험이었죠. 하지만 반응은 ‘제로’. 날씨도 나빴고 기분도 최악이었습니다. 정리하려는 찰나, 한 부인이 다가와 “실례합니다, 잠깐 괜찮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주방에 관심 있는 손님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집을 짓고 싶어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당시 이미 신축 일정이 꽉 차 있어서 솔직히 마음이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건축회사와 거의 계약 직전이었죠. 거절할 생각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결국엔 Evohome에서 짓고 싶다는 열정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상담 중에 제가 “왜 꼭 Evohome이어야 하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그 예쁜 아이언 계단이 너무 갖고 싶어요.”
그래서 마음을 다해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완성된 도면은… 단층집이었습니다 (웃음). 고객은 만족했지만, 집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2층은 없어도 괜찮아요, 그래도 계단만이라도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하던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웃음).
진짜 주문주택이란, 고객의 말 그대로 짓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생활 방식, 생각, 가치관을 이해하고, 건축가가 제안해야 비로소 ‘진짜 삶’을 담은 집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과거의 시공 예시 중 하나, 예쁜 아이언 손잡이가 돋보이는 에보 계단을 소개합니다.

계단 설계는 제가 직접 했습니다. 수십 년간 계단의 모든 비밀을 익혀온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에보의 목수들이 그 설계를 실제로 만들어냈습니다.

완성된 모습은 이렇습니다. 멋지지 않나요?
정교한 설계와 숙련된 손기술이 만나야 비로소 이런 아름다움이 나옵니다.




요즘 대부분의 건축회사는 대형 제조사(LIXIL 등)의 간편 발주 시스템으로 만든 ‘조립식 계단’을 주문합니다. 현장에서 나무를 다듬어 만드는 진짜 계단은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이런 계단을 원하신다면… 아마 “그건 좀 어렵습니다”라며 미소로 거절하겠죠.
그리고 “안 하는 게 좋아요~” 같은 말을 덧붙일 겁니다 (웃음).

